케이블의 절연층이 변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당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려고 했다. 절연층 변색은 보통 황색(노란색)으로 이루어지며, 이 경우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케이스다. 반면, 파란색으로 변색된 케이스도 발생했는데, 이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변색한 원인을 찾기위해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추론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열화라고 생각했다
케이블을 오래 다루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변색을 가끔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XLPE가 열을 받으면 어느 정도 색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시간 고온에 노출된 절연층이 하얀색에서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그동안 여러 자료에서 접해왔던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절연층이 노란색이 아니라 파란색, 정확히는 청록색에 가까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열화였다. 하지만 실제 샘플을 보고 주변 구조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변색의 위치와 색상이 일반적인 열산화에 의한 황변과 달랐고, 무엇보다 Outer SC와 맞닿아 있는 절연층에서 변색이 나타났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단순히 "XLPE가 열화돼서 색이 변했다"는 접근보다는 "도대체 어떤 물질이 이 색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으로 분석 방향을 바꾸게 됐다.
하얀 XLPE가 노랗게 변하는 이유
먼저 비교 대상으로 일반적인 황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XLPE는 LDPE를 가교시켜 만든 절연재이지만, 실제 케이블용 컴파운드에는 산화방지제와 가교 관련 첨가제 등 여러 성분이 들어간다. 고온에서 산소와 반응하면 고분자 내부에 라디칼이 만들어지고, 이 라디칼이 연쇄적으로 산화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산화방지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phenolic antioxidant는 고분자보다 먼저 alkylperoxy radical을 포착하면서 고분자가 산화되는 것을 지연시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산화방지제 자체가 희생적으로 반응하면서 원래의 분자구조가 변한다.

연구에서는 이 과정에서 conjugated diene과 quinone methide 등의 발색성 생성물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고분자의 변색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quinone methide가 polymer discoloration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다.
열 + 산소
→ 고분자 및 산화방지제에서 라디칼 생성
→ 산화방지제가 라디칼을 포착
→ 산화방지제의 구조 변화
→ 발색성 구조 형성
→ Yellow / Orange / Brown
그래서 황변을 발견했다고 해서 무조건 "XLPE 자체가 심각하게 열화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물론 산화방지제가 계속 소모되면 결국 XLPE 자체의 산화가 진행될 수 있다. 실제 XLPE 케이블 절연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온도가 높아질수록 산화방지제 양과 OIT가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 결국 황변은 산화방지제가 XLPE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화학적 흔적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장기적인 열산화 열화의 신호일 수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파란색이었을까
문제는 이번 케이스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청색은 일반적인 황변과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XLPE 내부만 바라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가졌다. 케이블은 여러 재료가 층을 이루고 있고, 각각의 재료에는 서로 다른 첨가제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인접한 재료의 첨가제가 서로 이동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케이스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이 Outer SC였다. 분석 자료에서는 Outer SC에서 사용되는 amine계 antioxidant가 XLPE 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됐다. 이 가설을 놓고 보니 변색 위치도 조금 더 이해가 됐다. 만약 Outer SC에 있던 특정 첨가제가 XLPE 쪽으로 migration한다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Outer SC
→ antioxidant migration
→ XLPE 표면 및 내부로 확산
→ 열·산소·peroxide-derived species와 반응
→ antioxidant 구조 변화
→ 새로운 chromophore 형성
→ Blue / Blue-green
여기서 중요한 것은 "amine계 antioxidant 자체가 파란색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무색에 가까운 물질이라도 산화 과정에서 분자의 전자구조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광학적 특성을 가질 수 있다.
파란색을 만드는 것은 '색소'가 아니라 발색단일 수 있다
이 부분을 조사하면서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를 발견했다.
amine계 방향족 화합물에서는 산화 과정에서 radical cation, quinoid structure, quinonediimine 계열 구조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분자 내부의 전자가 더 넓게 delocalization되면 가시광 영역의 빛을 흡수할 수 있다. 실제로 diphenylamine의 산화반응에서는 blue-violet diquinonediimine이 생성되는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연구에서는 Cu(II)가 diphenylamine과 결합해 산화반응을 촉진할 가능성도 제시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triphenylamine 계열 물질을 산화시키자 radical cation이 형성되면서 deep blue로 색이 변화하고, 약 670 nm 부근의 장파장 흡수밴드가 나타나는 것이 관찰됐다. 이것을 이번 케이블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Outer SC에 어떤 amine antioxidant가 사용됐는지를 알아야 특정 화학구조를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amine계 물질은 구조가 산화되면서 가시광을 흡수하는 청색 chromophore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실험적으로 가능한 현상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변색을 단순히 "파란색으로 변했다"가 아니라 "XLPE 내부에 새로운 발색 구조가 형성됐을 가능성"으로 접근하게 됐다.
결정적인 단서는 GC-MS와 햇빛이었다
원인을 찾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상부와 변색부를 나눠서 비교했다.

GC-MS 분석에서 Blue 영역은 Normal 영역과 다른 분석 결과를 보였고, 자료에는 peroxide 관련 부산물과 미지 성분(Unknown)이 확인돼 있었다. 이 결과 하나만 가지고 "이 물질이 파란색의 원인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변색부에서 정상부와 다른 화학적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한 단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결과가 있었다. 파란색으로 변한 부분을 햇빛에 노출했더니 약 48시간 후 색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 Blue 영역: Peroxide, Peroxide by-product, others(Unknown)
- Normal 영역: Peroxide, Peroxide by-product
이것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힌트였다. 만약 XLPE 주쇄 자체가 심각하게 열분해되어 파란색이 됐다면 단순한 햇빛 노출만으로 색이 빠르게 사라지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특정 chromophore가 만들어져 빛을 흡수하다가 UV나 햇빛에 의해 다시 구조가 변하거나 분해되는 photobleaching이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Chromophore 형성
→ Blue coloration
→ 햇빛/UV 조사
→ chromophore 구조 변화 또는 분해
→ 색 감소
결국 노란색과 파란색은 같은 변색이 아니었다
이번 문제를 따라가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XLPE 변색"이라는 하나의 단어만 가지고는 원인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황변은 열과 산소에 의한 산화반응과 phenolic antioxidant의 변환생성물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이번 청색변색은 Outer SC의 amine계 antioxidant가 XLPE 쪽으로 이동하고, 그 이후 산화 또는 peroxide-derived species와의 반응을 통해 새로운 chromophore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설득력 있었다. 따라서 현장에서 변색을 발견했을 때 내가 지금이라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도 달라졌을 것 같다.
"왜 노랗게 됐지?" 보다 먼저, "이 색을 만드는 물질은 어디에서 왔을까?" 를 확인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GC-MS만 보는 것이 아니라 FTIR, UV-Vis, LC-MS, antioxidant 정량분석, 그리고 깊이 방향의 migration 분석까지 연결해야 한다. 특히 Blue 영역에서 특정 amine antioxidant가 표면에서 내부로 갈수록 감소하는 패턴이 확인된다면 migration 가설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결론 — 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파랗게 변한 XLPE를 보고 단순한 열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샘플과 분석 결과를 하나씩 비교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황변은 열과 산소, 산화방지제의 반응에서 만들어질 수 있고, 청색변색은 주변 반도전층의 amine계 첨가제가 이동하면서 새로운 발색 구조를 만드는 별개의 현상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케이스에서는 Outer SC의 첨가제 migration 가능성, 변색부의 GC-MS 차이, peroxide 관련 부산물, 그리고 햇빛에 의한 청색 감소가 서로 연결되면서 원인의 범위를 상당히 좁힐 수 있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변색된 XLPE를 보고 색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첨가제가 들어갔고, 어디에서 이동했으며, 어떤 화학반응을 거쳐 발색단을 만들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원인을 찾으니 해결 방향도 보였다. 케이블의 변색 문제는 결국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와 첨가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문제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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